본문 바로가기
조선 왕조 실록

[예] 예종의 짧은 통치 이야기

by jarahippo01 2025. 6. 8.

조선의 제8대 왕 예종(睿宗)은 흔히 ‘짧은 재위’로만 기억되는 군주입니다. 세조의 아들이자 성종의 아버지였지만, 14개월이라는 짧은 치세로 인해 역사 교과서나 시험에서는 간단히 지나쳐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종실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세조의 정책을 계승하며 군사력 강화, 외교 안정, 문신 등용 등에 나선 ‘정치 실천형 군주’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실록에 기록된 예종의 통치와 업적을 중심으로, 단기간이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던 그의 정치 여정을 살펴봅니다.

세조의 아들, 조선의 흐름을 잇다 (예종)

예종은 세조의 장남으로, 어려서부터 세자로 책봉되어 정치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을 통해 보면, 그는 군사와 외교에 관심이 많았고 세조가 추진한 왕권 중심 통치를 자연스럽게 이어받았습니다. 즉위 당시 나이는 19세였고, 세조의 병세가 악화된 상황에서 예종은 이미 국정의 상당 부분을 대리하고 있었습니다. 세조의 사후 즉위한 예종은 안정적 권력 이양을 마친 상황에서 출발했지만, 그의 재위는 1년 2개월 만에 건강 악화로 마무리됩니다. 실록에 따르면 예종은 세조의 정책 기조를 크게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신속한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군사체계 재정비, 인사 제도 보완, 유능한 문신 등용에 집중하였으며, 외교적으로도 명나라와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놀라운 추진력을 보인 그는 실록에서 “나라의 뼈대를 다진 아버지를 계승하며, 살을 붙이려 한 군주”로 묘사됩니다.

예종의 군사개혁과 내부 안정 시도 (실록)

예종의 대표적 업적은 단연 군사체제 개편입니다. 세조 시대에 마련된 오위도총부를 중심으로 중앙 군권이 강화되었으나, 지역 방비와 병력 운영은 여전히 불균형 상태였습니다. 예종은 이를 보완하고자 함경도와 평안도 방비체계 강화, 변방 무장 재정비, 사병 금지법 강화를 단행합니다. 실록에서는 예종이 직접 장수들을 면접하고, 함경도 방어선에 필요한 병력 조정안을 지시한 기록이 확인됩니다. 그는 “서울만 지켜서는 나라가 온전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며 지방의 방어체계를 강조했습니다. 이와 함께 실록은 예종이 사병(私兵) 금지법을 재차 확인하고, 위반자에 대한 엄벌을 명령한 장면을 다룹니다. 이는 왕권 약화를 막고 병권을 국가가 독점하려는 의지로, 태종과 세조에 이어 군사력의 국가 귀속을 강화한 3대 군주로 평가됩니다. 짧은 재위지만 군사 개혁과 질서 회복에 대한 예종의 집념은 뚜렷했으며, 실록은 이를 “강력하되 절제된 리더십”이라 표현합니다.

실록이 말하는 예종의 통치 철학과 유산 (정치)

예종은 정치적으로 문신 등용의 기준을 ‘실력과 인성’에 두려 했다 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는 사간원과 홍문관을 통해 여러 차례 인사 검증을 진행했고, ‘학문은 깊으나 실천이 부족한 자’와 ‘말이 많으나 이치가 빈 자’를 구별하여 등용을 신중히 했습니다. <예종실록>에 기록된 유명한 일화로, 예종이 “입으로 충성하는 자보다 조용히 직무에 충실한 자를 귀하게 여긴다”고 말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정치적 과잉 경쟁과 말 많은 신하들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낸 것이며, 군주의 신중한 인사 기준을 보여줍니다. 한편, 그는 부왕 세조가 진행하던 『경국대전』 편찬작업을 이어받아 계속 진행시켰으며, 사법제도 개편도 시도했습니다. 실록은 그가 병으로 정무를 자주 쉬면서도 중요한 국정 사안은 매일 직접 보고받고 결재했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비록 성종처럼 오랜 통치를 하지 못했지만, 예종은 짧은 기간 동안 조선의 권력구조를 무리 없이 이어가며 안정적 정치를 구현하고자 한 과도기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예종은 단지 ‘짧게 통치한 왕’이 아닙니다. 실록은 그가 세조의 강력한 기반을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시각으로 정치와 군사, 인사제도 개혁을 시도한 정치적 실천가였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비록 몸이 허약해 큰 업적을 완성하진 못했지만, 그는 조선 왕조의 안정된 과도기를 설계한 군주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예종실록을 통해 조선 중기의 체제가 어떻게 안착되었는지를 되짚어보는 일은, 역사 속 '짧지만 강한' 리더십의 교훈을 되새기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