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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실록

[성] 성종, 조선 르네상스를 이끈 왕

by jarahippo01 2025. 6. 8.

조선 제9대 왕 성종(成宗)은 흔히 ‘문치주의의 실현자’, ‘유교 정치의 완성자’로 불립니다. 그의 통치는 조선 초기의 혼란기를 정리하고, 본격적인 안정기와 번영기를 여는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평가됩니다. 성종은 『경국대전』을 완성하고, 언론·교육·행정 전반을 정비했으며, 훈구와 사림의 균형 속에서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통치를 실현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성종실록>을 중심으로 성종의 정치, 행정, 문화적 리더십을 분석하며, 그가 왜 ‘조선 르네상스’를 이끈 군주로 평가받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경국대전 완성과 유교 정치 체계의 정비 (성종)

성종 치세의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단연 『경국대전』 완성입니다. 세조 대에 착수되고 예종 대에 이어졌던 이 작업은 성종 즉위 후 5년 만인 1474년에 최종 완간되며, 조선의 정치·행정·사법·경제 전반의 근간이 마련됩니다. 실록은 성종이 경국대전의 각 조항을 꼼꼼히 읽고 직접 수정을 지시한 장면들을 반복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단지 인쇄 승인만 한 것이 아니라, 법의 철학과 실제 적용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입니다. 경국대전은 유교적 질서와 군주 중심 통치를 제도화한 성과물로, 이후 조선 500년의 법제 운영에 기초가 됩니다. 성종은 이 대전을 바탕으로 관료제 강화, 세금제도 정비, 형벌의 균형화 등을 추진하며 법치주의에 기반한 유교 정치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성종실록>은 성종을 “조용하고 신중하며, 조문 하나하나에 민심이 담기길 바랐다”는 평가로 기록하며, 그는 정치의 모든 기준을 유교 윤리에 맞추고자 노력한 ‘이념적 실용가’로 그려집니다.

사림의 등용과 언론 제도 개편 (정치)

성종의 정치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훈구세력 견제와 사림 등용의 시작입니다. 세조 이후 중앙 정치를 독점하던 훈구파는 성종 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세력이었지만, 성종은 김종직, 정여창, 김굉필 등 사림을 서서히 발탁해 정치의 균형을 꾀합니다. 실록에 따르면 성종은 신진 유생들의 의견을 자주 청취하고, 사간원·사헌부·홍문관 등 언론 3사의 기능을 강화하여, 정치 비판과 상소를 적극 수용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 정치 문화는 ‘의견 개진과 비판이 허용되는 구조’로 전환되며, 향후 중종·선조 대의 사림 중심 정치를 예비하게 됩니다. 성종실록에서는 그가 과거제의 공정성 유지, 문신의 청렴도 조사, 비리 관료의 엄벌 등에 대해 직접 언급한 장면이 자주 등장하며, 이는 성종이 ‘정치의 도덕화’를 끊임없이 추구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성종은 지방 수령의 감찰 강화, 향교의 지원 확대, 유생 교육의 질적 향상에도 힘써 중앙-지방 간 유교 질서의 일체화를 추진했습니다. 이는 조선 중기 이후 유교 사회의 뿌리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합니다.

문화 르네상스의 완성, 실록이 전하는 성종의 리더십 (실록)

성종 시대는 단지 정치만이 아닌 문화적으로도 전성기였습니다. 실록은 성종이 예문관과 홍문관의 기능을 확대하여 국왕의 정치 보좌뿐 아니라 문예 창달의 중심 기구로 활용한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 시기 『동국여지승람』, 『동국통감』, 『경국대전』 등이 완성되며, 역사·지리·법률 등 조선 지식 체계의 표준화 작업이 이뤄졌습니다. 또한, 성종은 궁중음악 정비, 도서관(내각)의 서적 확충, 서화 활동 장려 등 문화예술에도 큰 관심을 기울였으며, 이는 조선 전기 문화 르네상스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실록은 그가 학문과 예술을 단지 취미로 즐긴 것이 아니라,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는 백성의 마음을 다스리고, 음악은 그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유교 경전을 실현하고자 한 성종의 문화철학이 실록 곳곳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실록은 성종의 리더십을 “모든 사안을 듣고, 묻고, 토론하고 결정하는 군주”로 표현하며, 탁월한 균형감각과 경청 능력이 그가 긴 재위기간 동안 안정적인 통치를 이어갈 수 있었던 핵심 요소였다고 평가합니다.

성종은 조선 정치와 문화의 기틀을 완성한 ‘제도적 군주’였습니다. 그는 세조가 강력하게 구축한 왕권 중심 구조를 유교 질서와 법제도로 정비하며, 안정적이고 실용적인 통치를 실현했습니다. <성종실록>은 그의 정치가 도덕과 효율,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한 결과임을 증명해줍니다. ‘조선 르네상스’는 단지 문화의 황금기만이 아니라, 이념과 실용이 조화를 이룬 통치 철학의 결실이었습니다. 지금, 성종실록을 다시 펼치면 리더십의 원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법과 예, 균형과 경청, 그리고 백성을 위한 통치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성종의 정치철학은 여전히 유효합니다.